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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은 재령이씨 영해파보물 제876호 등 50여점을 전시했다

세이뉴스 | 기사입력 2010/11/19 [11:03]

한국국학진흥원은 재령이씨 영해파보물 제876호 등 50여점을 전시했다

세이뉴스 | 입력 : 2010/11/19 [11:03]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은 2010년 11월 19일 11:00부터 <“자미화 향기는 반천년을 물들이고”-재령이씨 영해파 문중>이라는 주제로 2010년 제7회 기탁문중 특별전을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개최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학문을 보여 주기 위한 이번 전시는 재령이씨 영해파 문중의  이함 유언(보물 제876호)등 50여점을 2011년 2월 20일 까지 전시한다.






재령이씨 영해파는 고려말 조선초 고려왕조에 충절을 지키고자 함안으로 내려간 이오의 후손이다. 이오는 태종이 여러차례 출사를 요구하였으나 손수 뜰에 자미화(배롱나무)를 심고 고려왕조의 멸망을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후 자미화는 재령이씨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이오의 증손자 이애는 영해의 진성백씨와 혼인함으로써 영해사람이 되었다. 이애는 무과 급제 후 경주판관과 울진현령을 역임하였으며, 이애의 손자 이함이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발돋움하였다. 이함의 아들인 청계 이시청, 석계 이시명 형제는 학문적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으며, 손자인 존재 이휘일, 갈암 이현일 형제는 당대 사림의 종장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갈암 이현일은 퇴계학맥의 학통을 계승하여 영남학파를 영도하는 위치에 있었고, 숙종대 산림(山林)으로 소명을 받아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갑술환국으로 인하여 이현일은 종성으로 유배되는 등 고초를 겪게 되었고, 이후 이 가문에서는 벼슬이 거의 끊어지고 당시 집권층의 집요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학문과 절개이다. 운악 이함이 후손에게 남긴 “학문에 힘쓰고 이욕의 길에 쫓지 말라. 힘써 충성과 신의로써 가문을 이어나가라”고 한 유언은 이후 재령이씨들의 처세를 결정하는 것이 되어 수많은 학자들을 낳았으며, 그 중에서도 운악 이함, 석계 이시명, 존재 이휘일, 갈암 이현일은 불천위로 모셔져서 3세 4불천위를 배출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입향조인 이애의 무과급제 홍패(1520년), 이함의 문과급제 홍패(1609년)를 비롯하여 조선전기 재산 상속문서인 이애9남매 화회문기(1494년) 등 조선전기의 문서들을 비롯하여 여중군자로 유명한 정부인 장씨의 학발시와 정부인 장씨가 짓고 남편인 이시명이 쓰고 며느리인 무안박씨가 수를 놓은 전가보첩 등은 이번 전시를 통하여 최초로 공개된다. 그리고 이시형의 부인 열녀 무안박씨의 예장지(1602년)는 조선시대 혼인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갈암 이현일이 서거하였을 때 소식을 듣고 서울에 있던 선비들이 모여 곡을 하기 위해 모인「낙중회곡통문洛中會哭通文」(1704년)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스승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이다. 그리고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자 아들인 이재가 부친을 모시고 유배지에 기록한『창구객일』, 이함이 사재감 직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사재감계회도」(1605년)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희귀한 자료이다.




<주요전시자료>




《전가보첩傳家寶帖》




17세기 󰠾 1책 󰠾 자수 󰠾 62.5×60.0 󰠾 소장: 재령이씨 석계종가  




정부인 장씨가 지은 시를 남편인 석계 이시명이 쓰고, 며느리인 무안박씨가 수를 놓은 것이다. 이우표와 이주원의 발문이 있다.






《이함유언李涵遺言》

1628년󰠾 89.0×76.0 󰠾기탁: 재령이씨 영해파종가 충효당 󰠾 보물 제876호

이함이 74세의 고령으로 신병에 시달리는데다 정신마저 혼미하다며 자손, 얼손孽孫에 이르기까지 승중가사承重家舍, 전답, 노비 등의 상속에 대하여 지시한 문서이다. 말미에 영해파의 가훈이 된 “이익만 쫓지 말며 학문과 충신忠信에만 힘쓰라”는 구절이 보이고 있다. 이 문서는 중간의 재산처리를 제외한 부분이 『운악선생문집』에도 실려 있다.  “1628년 6월 자손들에게 유언을 하노라. (중략) 무릇 나의 자손들은 선훈을 잊지 말고 학문에 힘쓰고 이욕의 길에 쫓지 말라. 힘써 충성과 신의로써 가문을 이어나가면 내가 죽더라도 자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사재감계회도司宰監契會圖》

1605년 󰠾 지본수묵 󰠾 90.0×66.5 󰠾 소장 : 재령이씨 영해파종가 충효당

사재감 소속 관원 4명이 계회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계회도이다. 사재감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생선, 고기, 소금 등의 공급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사재감의 전경과 주변 경관, 그리고 청사 안의 계회장면을 그려 넣었다. 좌목에 직장 이함의 이름이 보인다.




《낙중회곡통문洛中會哭通文》  

한세필 등 󰠾 1704년 󰠾 15.8×135.0 󰠾 기탁: 재령이씨 찬하주손가

갈암 이현일의 부음을 듣고 당시 서울에 있던 문인 지우들이 모여 곡을 하는 예를 행하기 위하여 보낸 통문이다. 당시 이현일의 위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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